posted by 드닌 2020. 8. 1. 22:22

187 토사구팽

 

 

교문을 빠져나오자 여기저기를 뒤엎어, 온통 채소밭으로 개조된 운동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교정 한 구석에는 컨테이너 닭장이 들어서 있고, 몇 마리의 닭이 꼬꼬꼬곡ㅡ 하고 울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사다 씨와 나란히 걸으면서,

 

「이건 다신 체육제 같은 걸 열지 못하겠네요.」

「확실히 그렇네요. ㅡㅡ아, 그래도 거리 전체를 쓴다면! 이제 달리는 자동차도 없고요!」

「……차도를 쓰자는 건가요?」

「네네! 재미있겠다! 나중에 해요! 선배라면 반드시 세계 신기록을 세울 수 있을거에요!」

「하하하……」

 

대체 어떻게 해야 그렇게까지 제 체력을 과대 평가할 수 있을까요.

 

학교 건물 앞에는 제 키 정도 높이의 철조망과 땅을 파 만든 수로가 있어, 학교 출입이 완전히 관리되고 있었습니다.

관리실에는 총화기로 무장한 수염 투성이 해적 같은 남자가 다섯 명 가량 서 있었습니다.

 

만약 총을 여기로 향한다면, 하고

 

그런 기우일 생각이 머리에 스치면서 안면 통과로 지나가자, 드디어 건물 안에 첫발을 내딛을 수 있었습니다.

신발장이 늘어선 공간을 그냥 지나 교실이 늘어선 복도를 보면서,

 

「……이건 생각 이상으로… 공부하긴 글러먹은 분위기네요.」

「듣고 보니 그렇네요.」

 

쓴웃음을 짓는 아사다 씨.

그것도 그럴 만합니다. 저희가 다닌 복도는 만화나 잡지, 프라모델 같이 학칙으로 반입이 금지되던 것들이 즐비해 있었으니까요.

 

「그래도 수업은 아직 제대로 하고 있어요?」

「그런가요?」

「네. ………역시 모두 참가하진 않지만요.」

 

수험을 치지 않을 텐데요.

 

「그게, 세계가 이렇게 된 후의 수업이 훨씬 재미있다는 평판이 돌아서요. 선생님들도 취향인 수업들만 하신다고 하고. 저 세계가 이렇게 되고 나서부터 완전히 삼국지에 빠싹해졌어요.」

「헤ㅡ……」

 

솔직히 공부 관련해서는 씁쓸한 추억밖에 없는 제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아무래도 이 근처에 존재하는 모든 물자는 이 미카가오카 고등학교에 일단 모은다는 게 규칙인 것 같습니다.

학교가 싫은 남자애의 머릿속 같은 교사를 걸어, 저희는 어느 교실 앞에서 멈췄습니다.

 

「여기네.」

 

스즈키 선생님이 2학년 3반의 문을 가볍게 노크하자, 안에서 와글와글 들리던 목소리가 일제히 조용해졌습니다.

 

「네.」

 

응하는 목소리와 함께 스즈키 선생님이 문을 드르륵.

저는 어쩐지, 정체 모를 죄에 매달리는 듯한 기분이 되었습니다.

아까 전의ㅡㅡ 어린 여자애가 내건 효수가 뇌리에 눌어붙어 있었습니다.

 

소녀와 효수.

 

이 두 개는 세계에서 가장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 않을까요.

어쩌면 저는 정말 제가 모르는 세계에 들어와 버렸는 지도 모릅니다.

 

「안심해. 무서운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예에.」

 

딱히 위안이 되지 않는 조언을 흘려 들으면서, 저는 좁은데도 스무 명 정도의 성인이 나란히 있는 교실에 들어갔습니다.

동시에 그들의 시선이 제게 집중됐습니다.

마음에 그늘을 안은 사람은 꽤나 힘든 상황이 아닐지.

 

「그래.」

「………앗.」

 

그 가운데 자주 본 얼굴이 하나. 사사키 선생님입니다.

높은 목소리로 말하는 엿 같은 사람이었다고 기억합니다만, 이런 때일수록 잘 아는 사람이 있으면 안심하게 됩니다.

 

「안녕하세요 사사키 선생님.」

「뭐야 너. 마치 빌어 온 고양이 같이. 항상 붙어있는 그 멍청한 표정은 어디간 거냐?」

「어어……」

 

왠지…….

이 아저씨는 전과는 딱히 안 바뀌었습니다.

 

스즈키 선생님이 제 마음을 대변하는 것처럼

 

「아까 말했잖아요? 이 아이, 돌아간 이후 어쩐지 상태가 좀 이상해졌다고.」

「음, 들었지. 역행성 건망증이라고. 그런건가?」

「이런 일로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잖아요?」

 

「아니, 있네. ………슬슬, 싸우는 거에 질렸다. 그러니 기억 상실인 것처럼 시늉을 하고 있다, 같은.」

「그건……!」

 

그러자 아스카라 불린 여자 아이가 비명처럼 외쳤습니다.

 

「선배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그녀가 언성을 높이자, 어쩐지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어른들이 허리를 들었습니다.

마치 마녀의 역린을 건드렸다는 듯이.

자리에 묵직히 앉아 있는 건 거의 사사키 선생님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ㅡㅡ 그런 너희들의 기대가 이 녀석을 몰아붙인 건지도 모르지. 원래 얘는 눈에 띄길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누군가의 그림자에 숨어 조용히 살기를 바라던 아이. 남이 의지한다는 상황 그 자체가 이 녀석한데 부담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겠지.」

「그건……!」

「그래서 어떠냐, 너. 뭔가 짚이는 거라도 있나?」

 

사사키 선생님은 어딘가 저를 시험하는 듯한 얼굴.

어찌됐던 화가 난 저는 거의 자동반사적으로 대답했습니다.

 

「짚이는 거라 해도…… 애초에 저는 뭐가 뭔질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몸은 건강합니다.」

「그래.」

 

선생님은 퉁명스럽게 말하고선

 

「그럼 무리하지 않아도 좋으니, 잠시 쉬게. 애초에 너는 너무 일하고 있었어.」

「너무 일을 해……?」

「ㅡㅡ정말 전부 잊은거냐?」

「아니 그러니까, 그렇다고 했잖아요.」

「그러냐. 뭐, 여학생 한 명 쓸모 없게 됐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지. ……그렇죠? 여러분?」

 

마지막 말은 이 자리에 있는 저희 이외의 어른 전원에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사사키 선생님에게 위험한 눈길이 쏠리고, ㅡㅡ 그것만으로도 왠지 이 자리의 상황이 보입니다.

선생님은 분명, 여기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과 적대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거의 모든 사람”은 결코 제 편이 아닌 것도.

 

어른들이 작게 「음」이나 「후우」나 「예에」같이 대답하자 사사키 선생님은 거기서 첫번째로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럼, 뒷일은 우리한테 맡겨라. 너는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천천히 해도 좋아.」

「……흠.」

 

말투는 도발하는 것 같지만,

적어도 그 제안은 지금의 제게는 고마운 일임은 틀림없습니다.

 

「아, 그래.」

「?」

「이 위층, ㅡㅡ 3학년 3반에 네 사물을 둔 채로 있다. 학교도 점점 공간이 채워지고 있고, 네 손으로 치워 둬.」

「알겠습니다.」

 

사사키 선생님과의 대화는 거기까지였습니다.

다른 어른들은 뭔가 제게 할 말이 있어 보였지만,

 

「뭘 멍하니 있어. 빨랑빨랑 나가.」

 

선생님은 어디까지고 거만하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그 말에 따라 교실을 떠났습니다.

 

 

 

 

「역시 사사키 선생님은 엿같아요! 전에 선배가 말한 대로!」

 

교실을 나오자 아사다 씨가 씩씩 화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요?」

「하지만 선배는 그! 모두의 은인이잖아요? 그걸 마치 토사구팽하듯……」

「음.」

 

스즈키 선생님, 아스카 씨, 리츠코 씨는 씁쓸한 얼굴로 침묵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리 생각할 수도 있겠죠. 사사키 선생님은ㅡㅡ 저를 그 자리에서 떠나게 해줬다고.」

「떠나게 해줘요?」

「네. 아무래도 저 자리에 있는 어른들은 제가 뭔가를 부탁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였지요.」

「그건,」

「선생님은 제 상태를 보고, 바로 그 장소를 떠나게 했다……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자 스즈키 선생님이 미간에 주름을 짓고서는,

 

「그래. 그런 움직임도 있어. 사람이 늘면서… 비교적 여러 의견도 나오고 있고. “사냥개”처럼 되지 않게 하려고 우리도 노력은 하고 있다만…」

「사냥개, 인가요…」

 

저는, 누굴 위해서 토끼를 쫒던 개가 된 적이 없는데요.

 

어쩐지 어두운 기분이 되면서, 저희는 위층ㅡㅡ 기억을 잃기 전의 제가 썼다는 교실로 향했습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일주일에 2개...라고...?

토사구팽라 번역한 게 원문에서는 달리던 개, 인데 이게 토사구팽에서 나온 구절입니다. 달리던 개 이건 우리나라에선 쓰지 않는 말이라 그냥 편하게 토사구팽 썼습니다. 토끼를 잡았으니 사냥개도 버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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